비아그라 같은 발기부전 치료제에 알츠하이머 예방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한 남성 26만여 명에서 일반 남성보다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20% 가까이 낮게 나타난 것이다.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발기부전 치료제의 효과가 뇌 혈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아그라는 수십 년에 걸쳐 안전성이 입증된 약인 만큼, 관련 연구가 발전하면 알츠하이머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높다.
◇ “비아그라가 알츠하이머 발병률 낮춰”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루스 브라우어 교수 연구팀은 비아그라 등 포스포다이에스터레이스5(PDE5) 억제제 계열 발기부전 치료제가 알츠하이머 예방 효과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를 8일 미국 신경학회 학술지 뉴롤로지(Neurology)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글로벌 임상 업체인 아이큐비아 데이터를 활용, 발기부전 진단을 받은 남성 26만9725명의 의료 기록을 평균 5년간 추적 관찰했다. 관찰 이전에 알츠하이머나 인지 저하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제외했다.
연구 기간에 총 1119명이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는데, 연구팀이 나이·흡연 여부·음주량 등 변수를 반영해 조정한 결과 PDE5 억제제를 복용한 사람은 복용하지 않은 사람보다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18% 낮았다. 특히 PDE5 억제제를 처방받은 횟수가 많을수록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최대 44%까지 낮아졌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PDE5 억제제가 알츠하이머를 직접적으로 예방했다는 증거는 아니라고 밝혔다. 브라우어 교수는 “신체적으로 활발한 남성이 발기부전 치료제를 많이 찾는 등의 변수가 있다”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PDE5 억제제의 알츠하이머 예방 효과 확인 같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 화이자가 협심증과 고혈압 치료를 위해 개발한 PDE5 억제제는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떨어져 개발이 중단될 처지였다. 하지만 임상 대상자들에서 뜻하지 않은 발기부전 개선 효과가 발견되면서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됐다. 영국 BBC는 “비아그라는 음경으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면서 “이번 연구는 비아그라가 뇌 혈류 개선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알츠하이머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급격히 발전하는 알츠하이머 진단·치료
‘망각의 질병’ 알츠하이머는 몇 년 전만 해도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것은 물론 발병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 인지 저하 속도를 일부 늦추는 일라이릴리의 아두헬름이 나오면서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레켐비는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27%까지 낮춰준다. 환자 뇌의 아밀로이드 단백질에 항체를 결합해 제거하는 방식이다. 미국, 일본, 중국에서 허가를 받았고 한국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더 효과가 좋은 약도 곧 나올 전망이다. FDA 심사 단계인 도나네맙은 임상에서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36%까지 지연시킨다. 김영수 연세대 약대 교수는 “레켐비와 도나네맙은 아직 초기 환자에게만 적용할 수 있고, 심각한 부작용도 유발할 수 있지만 알츠하이머 치료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비아그라처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약물을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쓰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 같은 GLP-1 계열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GLP-1 약물이 갖고 있는 항염증 효과가 동물 실험에서 알츠하이머 치료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재 20여 건의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알츠하이머 진단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를 진단하는 유일한 기술인 양전자단층촬영(PET)은 가격이 비싸 접근성이 떨어진다. 지난 6일 조선대·고려대·연세대 공동연구팀은 1만원 이하의 비용으로 치매 발병 조기 예측이 가능한 형광물질을 개발했다. 지난달에는 스위스 연구진이 96% 정확도를 보이는 혈액 알츠하이머 진단법을 공개했다.